自分を捨てた母を訪ねて韓国へ、その闘いの記録(ニュースde韓国語#118)

アメリカの家庭に養子縁組されたある女性が、37年ぶりに訪れた自分を門前払いした父親を相手取って起こした実子確認訴訟で、6月12日に勝訴した。今回の判決は、海外養子縁組者が韓国で起こした最初の実子確認訴訟で、朝鮮戦争後、海外に養子縁組されたが、実の家族を探すことを切望していた人々にとって重要な前例になる見通しだ。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 여성이 37년 만에 찾아간 자신을 문전 박대한 아버지를 상대로 제기한 친자 확인 소송에서 12일 승소했다. 이번 판결은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서 제기한 첫 번째 친자 확인 소송으로,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됐지만 친가족을 찾길 갈망하던 이들에게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ソウル家庭裁判所・家事1単独の廉祐英(ヨム・ウヨン)部長判事は同日、子供時代、米国に養子縁組されたカラ・ボス(韓国名=カン・ミスク)が、実の父親であるオ某氏を相手取って起こした認知請求訴訟で、原告勝訴の判決を下した。今回の判決で、ボスはオ氏の家族関係証明書に法的に名前を記載できるようになった。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염우영 부장판사는 이날 어린 시절 미국에 입양됐던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가 친부 오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인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보스는 오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법적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宣告が終わると、ボスは感激したのか肩を震わせながら泣いた。 父親のオ氏は同日、裁判所に出席しなかった。 ボスはオ氏の婚外子である可能性が高いという。

선고가 끝나자 보스는 감격에 겨웠는지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아버지 오씨는 이날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보스는 오씨의 혼외 자식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ボスは1983年、忠清北道槐山のある市場の駐車場に捨てられ、翌年、米ミシガン州セリデンの里親に引き取られた。オランダ人の夫と結婚し、2人の子どもを持つ彼女は、韓国人の母親が自分を捨てたことで経験した大きな苦痛について考え始め、母親と再び連絡することを切望するようになった。

보스는 1983년 충북 괴산의 한 시장 주차장에 버려져 이듬해 미국 미시간주 세리든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네덜란드 남편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둔 그는 한국인 어머니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겪었을 엄청난 고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와 다시 연락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게 됐다.

しかし、韓国の私生活保護法は、養子縁組者の場合、住所や電話番号など生みの親の情報を親が同意する時にのみ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る。 ボスは2017年に韓国を旅行し、自分が捨てられた市場を訪れ、ビラをまいた。成果はなかった。

하지만 한국의 사생활보호법은 입양인의 경우 주소와 전화번호 등 친부모의 정보를 부모들이 동의할 때에만 얻을 수 있도록 한다. 보스는 그래서 2017년 한국을 여행하며 자신이 버려진 시장을 방문하고 전단을 뿌렸다. 성과는 없었다.

2016年、ボスは自身の遺伝子資料をオンライン家系図プラットフォーム「マイヘリテージ」に掲載した。 昨年1月、自身のアカウントを再確認し、自分と遺伝子情報が一致するある留学生を見つけた。これをきっかけにボスは父親を尋ねた。昨年11月18日、ボスは実子確認訴訟を起こし、そうしてやっと合法的にオ氏の住所が分かった。今年3月、父親に会うためにソウル江南のあるマンションのベルを鳴らしたが、父親はボスに会わないと言った。

2016년 보스는 자신의 유전자 자료를 온라인 족보 플랫폼 ‘마이헤리티지’에 올렸다. 지난해 1월 자신의 계정을 다시 확인했고, 자신과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한 유학생을 찾게 됐다. 이를 계기로 보스는 아버지를 찾았다. 결국 보스는 지난해 11월18일 보스는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그러고서야 합법적으로 오씨의 주소를 알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의 벨을 눌렀지만 아버지는 보스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オ氏は裁判所の判決が出た後、ボスに会うという意思を明らかにしたという。ボスは判決直後、記者団に対し、「今回の判決が家族に接触する権利を持たない養子縁組者の未来を変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願っている」とし、「来週、父親と会うことにした。 母親を捜すための対話をする」と話した。彼女は、下手な韓国語で「お母さん、会いたいです。 本当にすまないと思わないでください。 そのまま来てください」とマスクを外し、にっこりと笑った。

오씨는 법원 판결이 난 뒤에 보스를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보스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이 가족에게 접촉할 권리를 갖지 못한 입양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길 바란다”며 ”다음 주에 아버지와 만나기로 했다. 엄마를 찾기 위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엄마, 만나고 싶어요. 정말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냥 오세요”라고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었다.

原文:

ちょっと解説

保健福祉部によると、1958年以後、公式に確認されているだけで約16万7000人が海外へ養子縁組に出されました。正式な手続きを経ずに渡った子はもっと多いと推測されます。特に多かったのは1970~80年代で、「赤ちゃん輸出大国」という異名を取った時代もありました。特にボスさんが生まれた1980年代前半が、送出者数としてはピークでした。2010年代になって海外養子縁組の手続きが厳格化され、ピークの1割程度にはなったものの、まだ送出は続いています。なぜ多かったのか、といった話は音声で。

なお、こちらにもう少し詳しい経緯が書かれています。





ちょっと解説

韓国はかつて「赤ちゃん輸出大国」の異名を取るほど海外養子縁組の盛んな国でした。朝鮮戦争(1950-1953)の戦争孤児が、荒廃して貧しかった韓国からアメリカに渡ったのが始まりですが、1970~80年代に急増します。経済成長で地方から都市への人口移動が起きる過程で、伝統的な家族制度の枠外に置かれる婚外子などが多数生まれたことが背景にあるとされており、最も多かった1985年には、合法的なものだけで8837人が海を渡りました。2010年代に法的手続きが厳格化されてその数は大きく減ったものの、保健福祉部の統計によれば、2019年でも317人が海外へ養子縁組しています。

ピークだった時代に海を渡った世代が成人し、韓国で実の親を探すケースが2000年代から相次いで報じ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今回取り上げた女性も、そのうちの一人と言え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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