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世紀のソウルにあふれる「京城」(ニュースde韓国語#048)


チョン・ジョンヒョン
アート/カルチャージャーナリスト
KNJエンターテイメント
最近、街を歩いてみると、次々に出会う言葉がある。それが「京城」だ。京城は、東アジア文化圏で「首都の城」という意味で使っていた言葉で、朝鮮王朝実録をはじめとする朝鮮時代のいくつかの文献にも度々登場する。しかし京城は、心理的に日本の植民地時代を思い起こさせる力を持っている。日韓併合が起きた後の1910年9月30日、朝鮮総督府の勅令によって漢城と呼んでいた朝鮮の都を京城に改称したためだろう。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부쩍 자주 마주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경성’이다. 경성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수도의 도성’이란 의미로 사용하던 단어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에도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경성은 심리적으로 일제강점기를 상기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경술국치가 일어난 이후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칙령에 의해 한성이라 부르던 조선의 도읍을 경성으로 개칭했기 때문일 것이다.
このような生まれ持った短所にもかかわらず、京城について否定的な認識ばかりあるわけではない。主に日本を経て変形された形態で流入した西洋の文物は、都市を変え、人々の生活様式に影響を与えた。そうした過程で、古典ハリウッド白黒映画に出てくるような装いで、入念に「段取り」して新しいものに好意的だったモダンボーイ、モダンガールが「おしゃれ」と認識され、京城は当代の流行をリードする物理的な場所であり、おしゃれな人の心理的な安息の場として浮上した。
이런 태생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경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일본을 거쳐 변형된 형태로 들어오던 서양 문물은 도시를 바꾸고, 사람들의 생활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고전 할리우드 흑백 영화에 나올 듯한 옷차림으로 꼼꼼히 단도리하고 신문물에 호의적이던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멋쟁이’로 인식되면서, 경성은 당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물리적 장소이자 멋쟁이의 심리적 안식처로 부상했다.
実際に、近来のドラマや映画の中の京城を見れば、その時期のロマンが作った韓国の近代都市文化の魅力的な一面を発見するのは難しくない。つまり、日本の植民地時代と呼ばれる状況のもとで、京城を見る観点はますます多様化しており、肯定あるいは否定という二分別的な視線で分けることは意味がないと言える。しかし今、京城という単語の氾濫の中で、すでに化石となった用語の日本色、すなわち倭色という古く民族偏向的な単語を再び引っ張り出すしかない状況に直面する経験はかなり憂慮する。
실제 근래의 드라마나 영화 속 경성을 보면 그 시기의 낭만이 만든 한국 근대 도시 문화의 매력적인 일면을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즉, 일제강점기라는 상황 아래 경성을 보는 관점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으며, 긍정 혹은 부정이란 이분법적 시선으로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경성이란 단어의 범람 속에서 이미 고루해진 용어인 일본색, 즉 왜색이라는 낡고 민족 편향적인 단어를 다시금 끄집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는 경험은 꽤나 우려스럽다. 
先日、最近のホットプレイスの益善洞でパウンドケーキを売る「京城OOO」という名前の店に立ち寄ったとき、全身が凍りつく衝撃を受けた。アンティークな感じで落ち着いた内装の店は、多くの人々が魅力を感じる、いわゆるインスタグラム聖地の空気を醸し出していたが、その中で私の目を引いたのは、他でもないケーキセットだった。6種類のケーキをきれいな紙に包装してサイズにぴったり合った箱に入れた姿が、お土産としてとてもいい感じだった。その「きれいな」紙の模様について詳しく認識するまでは、だ。
얼마 전 요즘 핫플레이스인 익선동에서 파운드케이크를 파는 ‘경성OOO’이란 이름의 가게를 들렸을 때 온몸이 얼어붙는 충격을 받았다. 앤티크한 느낌으로 차분히 꾸민 가게는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소위 인스타그램 성지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중 내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케이크 세트였다. 여섯 종류의 케이크를 어여쁜 종이로 포장해 사이즈에 꼭 맞는 박스에 넣은 모습이 선물용으로 무척이나 괜찮아 보였다. 그 ‘어여쁜’ 종이의 문양에 대해 자세히 인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色とりどりの包装紙の実体に接するやいなや、頭は冷め、胸は熱くなり始めた。花、扇子のようなものと、幾何学的な要素をビビッドな色彩でパターン化した包装紙は、文字通りある商品の「殻」だった。日本でよく見られる観光商品だ。日本文化の神髄という京都の手工芸品の紙まで行く必要もなかった。インターネットで頑張って(決心して=意訳)探せばすぐに出てくる程度の水準だったからだ。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실체를 접하자 머리는 차가워지고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꽃, 부채 같은 사물과 기하학적 요소를 비비드한 색채로 패턴화한 포장지는 말 그대로 어떤 상품의 ‘껍데기’였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관광 상품 말이다. 일본 문화의 정수라는 교토의 수공예 종이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에서 마음먹고 찾으면 금세 나올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一部の人々は疑問を提起するかもしれない。このデザインが日本のものであると、どうやってはっきり確信するのか。筆者は、パッケージをすべてデジタル画像として保存した後、インターネット検索を開始した。1時間ほどかけただけなのに、パッケージの原本の大部分をイメージストックのサイトで見つけた。イメージストックについていた検索用キーワードに何度も登場する共通の単語は、まさに「Japanese」だった。
어떤 사람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이 디자인이 일본 것임을 어떻게 명백하게 확신할 것인가. 필자는 패키지를 모두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한 후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1시간 정도를 투자했을 뿐인데 패키지 원본의 대부분을 스톡(stock) 이미지 사이트에서 찾아냈다. 스톡 이미지에 달린 검색용 키워드에 계속 등장하는 공통 단어는 바로 'Japanese'였다.
誤解するかもしれないので、はっきりさせておく。今この文章は、店で売っている商品の包装紙が手製でないとか、専門のデザイナーに任せた努力の産物ではないと批判しているのではない。ここで問題になるのは画像の質ではなく、画像の種類だ。すべての画像は、Japaneseとキーワードで簡単に見つかる。つまり、倭色を越えて日本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活用したのと変わらないという意味だ。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짚고 넘어간다. 지금 이 글은 가게에서 파는 상품의 포장지가 손수 그리거나, 전문 디자이너에게 맡긴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지의 질이 아니라 이미지의 종류다. 모든 이미지는 Japanese란 키워드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즉, 왜색을 넘어 일본의 정체성을 활용한 것이나 진배 없다는 뜻이다.
ある人は首をかしげるかもしれない。今の世の中に日本食の店がどれだけたくさんあって、居酒屋もまたどれだけ韓国の夜を支配していただろうか。日本語を禁止する世の中でも、日本風を検閲する時代でもないのに、何を古臭い「倭色」叩きかと。一理ある。1998年、日本の大衆文化の開放政策で、もう日本文化は韓国で正式に愛されている。心理的に好き嫌いのせいにすることもできるだろうが、日本の多くの商品は韓国で流通している。今すぐどこかのコンビニでも行ってみよう。日本から輸入した菓子、ドリンク、ビールが一つもない所はない。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지금 세상에 일식집이 얼마나 많으며, 이자카야는 또 얼마나 한국의 밤을 지배하고 있던가. 일본어를 금지한 세상도, 일본 풍을 검열하는 시대도 아닌데 무슨 케케묵은 ‘왜색’ 타령이냐고 말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1998년 일본 대중 문화 개방 정책으로 이제 일본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심리적으로 호오를 탓할 순 있겠지만 일본의 수많은 상품은 한국에 유통된다. 당장 아무 편의점이나 가보자. 일본에서 수입한 과자, 음료수, 맥주 하나 없는 곳이 없다. 問題は、状況とその背景だ。
「京城OOO」で使われた「京城」は、1910年9月30日から1945年8月15日までの約35年間、ソウルを別の名前で呼んでいた特定の時期を指すのは火を見るより明らかだ。その時代が内包する独特の雰囲気を、店の主なアイデンティティーとしていることに異議を唱える人はいないだろう。しかしパウンドケーキを包装したきれいな紙がなぜ、日本文化をルーツとする視点の要素をちりばめているのか。私たちが考える京城のイメージは、モダンボーイとモダンガールが闊歩していた新しい文化の格好いい新世界ではなかったのか? いつから現代が眺める京城のクールなイメージが、日本の美意識の産物である倭色と同一視され始めたのか。
문제는 상황과 맥락이다. 경성OOO에서 쓰인 '경성'은 1910년 9월 30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약 35년간 서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게 명약관화하다. 그 시절이 내포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상점의 주된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는 데 이의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파운드케이크를 포장한 어여쁜 종이가 왜 일본 문화에 뿌리를 둔 시각 요소로 점철된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경성의 이미지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활보하던 신문물의 멋진 신세계가 아니던가? 언제부터 현대가 바라보는 경성의 쿨한 이미지가 일본 미의식의 산물인 왜색과 동일시되기 시작했나. 
そしてパウンドケーキの本場を調べるとイギリスまでさかのぼる。19世紀末から20世紀初頭まで、イギリスをはじめヨーロッパ全域を支配していた造形思潮は、アールヌーボーとアールデコだった。当時の京城は、世界の流行を同時代的に素早く習得していた状態だった。モダンボーイとモダンガールが出入りする京城のケーキ屋の包装紙で、同時代のヨーロッパで流行したアールヌーボー、アールデコのスタイルと日本の伝統的な文様のうち、どちらがより似合っていただろう? 答えはあえて言わなくてもいいだろう。
그리고 파운드케이크의 본고장을 따지자면 영국까지 올라간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을 지배하던 조형 사조는 아르누보와 아르데코였다. 당시 경성은 세계의 유행을 동시대적으로 빠르게 습득하고 있던 상태였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들락거릴 경성의 케이크 가게 포장지로 동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아르데코 스타일과 일본 전통 문양 중 어떤 것이 더 어울렸을까? 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京城という名前で呼ばれていた時期に、ソウルが日本統治下だったのは歴史的事実だ。しかし、京城はすなわち日本ではなかった。日本人が異色の文化を体験するために団体旅行にやってきた朝鮮の最大の都市・京城は、朝鮮の遺産と新たな文明の融合によって徐々に近代化していた日本の物理的植民地だったのであり、日本の文化的植民地では決して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21世紀のソウルの小さなパウンドケーキの店が、パッケージのイメージを選択した観点が、日本の植民地支配に対する逆鱗に触れたと考えるのは針小棒大だろうか。
경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시기에 서울이 일제 치하였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경성이 곧 일본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단체 관광을 오던 조선의 최대 도시, 경성은 조선의 유산과 신문물의 융합으로 서서히 근대화되던 일본의 물리적 식민지였지, 일본의 문화적 식민지는 결코 아니었다는 말이다. 21세기 서울의 작은 파운드케이크 가게가 패키지 이미지를 선택한 관점이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한 역린을 건드린다 여기면 침소봉대일까. 
来年は2019年だ。遠い未来だと思っていた2020年まであと1年であり、同時に日本統治下で多くの人が義憤にかられ立ち上がり、非暴力で抵抗した3.1運動が100年を迎える年だ。このような歴史的な瞬間に、京城と日本を同一視する観点が自然に染み込んでいるのであれば、物理的に、精神的に日本を克服するために力を尽くしてきた過去数十年の歳月があまりにも空しくないだろうか。過剰な推測、妄想と考えてもよい。しかし、小さな火種が少しずつ広がって森をすべて燃やしてしまう前に、悩みと考察、対話と討論が必要ではないかと思う。 
내년은 2019년이다. 미래의 전형이라 생각하던 2020년이 1년 남은 때이자, 동시에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사람이 의연히 일어나 비폭력으로 항거하던 3.1 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경성과 일본을 동일시하는 관점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면,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힘써왔던 지난 수 십 년의 세월이 너무도 허망하지 않을까. 과한 추측, 망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작은 불씨가 조금씩 번져 숲을 모두 태워버리기 전에 고민과 성찰,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原文:

ちょっと解説

長文で難解な文章ですが、要するに、

・日本の植民地時代に改称された「京城」は、近代化していた日本を通じて西洋の多様な文化が流入していたのであり、文化的に日本に支配されていたわけではなかった

・しかし最近、京城の文化を日本文化と同一視、混同する向きがあり、なげかわしい

という趣旨の話をしています。

植民地時代は、かつては被支配と抵抗、抑圧といった暗くネガティブなイメージで語られることが多く、「京城」と呼ばれた時代と街はその代表格でした。近代日本の文化も支配者の威圧のイメージが強調されましたが、時代の移り変わりとともに、明るい肯定的なイメージに変化しています。

その背景には、1998年以降の日本文化開放も大きく作用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かつて日本の映画や音楽は韓国で上映、上演できませんでしたが、禁止の理由としてよく「野蛮、低俗」という説明がなされていました。文化開放政策や日本への旅行者増加で、多くの人々が等身大の日本文化に実際に触れるようになり、そうした説明が説得力を失っていった結果といえるでしょう。その結果、かつて忌避されていた日本風居酒屋や復元日本家屋といった建物が、ソウルや地方都市の街角に多くみ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また、韓国人にとって日本は「物理的には支配されたが文化的には支配されていなかった」と、韓国の文化的優位を強調したがる心理があり(この文章もそうした価値観の延長線上にあると言えますが)、「植民地時代に流入した文化は、実は日本オリジナルではないのだ」と考えることで、当時の日本文化を受容していた人々を肯定的に描き直す作業が始ま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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