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画「タクシー運転手」その後のリアル(ニュースde韓国語#015)

1980年、光州で「5・18民主化運動」を取材した「青い目の目撃者」、ドイツ公営放送連合(ARD)のユルゲン・ヒンツペーター記者は、2003年青巌メディア文化財団とハンギョレ新聞社が与える第2回ソン・ゴンホ言論賞を受賞し、「勇敢なタクシー運転手キム・サボクさんに感謝する。彼に会いたい」と語った。ヒンツペーター記者はついに彼に再会できず、2016年に息を引き取った。
1980년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취재한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 공영방송연합(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2003년 청암언론문화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주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으며 “용감한 택시기사 김사복씨에게 감사하다. 그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힌츠페터 기자는 끝내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지난 2016년 숨을 거뒀다.
忘れられたようだったキム・サボク氏の存在は昨年、映画「タクシー運転手」を通じて世間に知られた。キム・サボクさんもすでに遥か昔にこの世を去った後だった。しかし、彼らが記録した映像は残った。キム・サボク氏の助けを借りて光州に行ったヒンツペーター記者が撮影した映像は、5月17日から「5・18ヒンツペーターストーリー」というドキュメンタリーで公開される。ハンギョレは9日、ソウルのあるカフェでキム・サボク氏の長男キム・スンピル氏(59)に会った。
잊혀진 듯 했던 김사복씨의 존재는 지난해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김사복씨도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그들이 기록한 영상은 남았다. 김사복씨의 도움으로 광주에 간 힌츠페터 기자가 촬영한 영상은 오는 17일 <5·18 힌츠페터 스토리>라는 다큐멘터리로 개봉된다. <한겨레>는 지난 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김사복씨의 큰 아들 김승필(59)씨를 만났다.
平凡な事業家として生きてきた金氏の人生は映画「タクシー運転手」が公開され、変わり始めた。さびしく息を引き取った父の人生を知らせる機会という考えで、押し寄せるインタビュー要請などを拒絶しなかった。金氏は、最初に映画を見た後、「喜びと残念さが交差した」と述べた。「父が民主化に黙って寄与した点が知られた点は嬉しかった。しかし、父を表現した『マンソプ』というキャラクターは虚構の人物でした。マンソプの話が父の話であるかのように知られてしまってはどうしようと残念でした」
평범한 사업가로 살아왔던 김씨의 삶은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롭게 숨을 거둔 아버지의 삶을 알릴 기회라는 생각에,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 등을 거절하지 않으면서다. 김씨는 처음 영화를 본 뒤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민주화에 말없이 기여한 점이 알려진 점은 기뻤죠. 하지만 아버지를 표현한 ‘만섭’이라는 캐릭터는 허구의 인물었습니다. 만섭의 이야기가 아버지의 이야기인 것처럼 알려지면 어쩌나 마음은 불편했죠.”
■キャプション■1975年10月3日、張俊河先生が不審な死をとげた京畿道抱川の薬師峰にキム・サボク氏(右側3人目の正面に見える人)と、ユルゲン・ヒンツペーター記者(キム・サボク氏の左でメガネを書けている人)が、咸錫憲先生と一緒に現地調査を行った様子
1975년 10월3일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 김사복씨(오른쪽 세번째에서 정면을 보는 이)와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김사복씨 왼쪽 안경쓴 이)가 함석헌 선생과 함께 답사를 갔던 모습이다.
金氏が最も訂正したいという事実は、父キム・サボク氏が1980年5月に光州に行った契機だ。映画では、「マンソプ」がタクシー10万ウォンを稼ぐために、他の運転手の客を横取りしたとして描かれるが、実際には当時、光州の状況を知っていたキム・サボク氏は、ヒンツペーター記者と「同志的関係」として動いたのだ。「父は1970年代初頭から、ソウル・パレスホテルのタクシーを運営しながら、外国人客を予約制でのみ乗せていた。偶然誰かを乗せ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김씨가 가장 바로잡고 싶은 사실은 아버지 김사복씨가 1980년 5월 광주로 가게 된 계기다. 영화에서는 ‘만섭’이 택시비 10만원을 벌기 위해 다른 기사의 손님을 가로챈 것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당시 광주 상황을 알고 있던 김사복씨는 힌츠페터 기자와 ‘동지적 관계’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서울 파레스호텔 택시를 운영하면서 외국인 손님들을 예약제로만 받으셨어요. 우연히 누구를 태우는 일은 없었습니다.”
キム氏は、父キム・サボク氏が主にドイツと日本の記者たちをよく乗せたことを覚えていた。「今回のドキュメンタリーを準備しながら、様々な資料を探してみると、父とヒンツペーター記者は5・18民主化運動より5年早い1975年頃から交流があったんですよ」。彼は1975年10月、父キム・サボク氏がヒンツペーター記者らと一緒に撮った写真を公開した。写真の中では、咸錫憲、ケ・フンジェ(桂勳梯)先生など、当時の民主化運動の「巨木」とともにしていた。キム・サボク氏が当時「民主化の波」に参加したという貴重な証拠だ。キムさんは「父が、張俊河先生が発行していた『思想界』などを読んでいだ姿をよく覚えている」と伝えた。
김씨는 아버지 김사복씨가 주로 독일과 일본 기자들을 자주 태웠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각종 자료를 찾아보니 아버지와 힌츠페터 기자는 5·18 민주화운동보다 5년 앞선 1975년께부터 교류가 있었더라고요.” 그는 1975년 10월 아버지 김사복씨가 힌츠페터 기자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함석헌·계훈제 선생 등 당시 민주화운동의 ‘거목’들이 함께 했다. 김사복씨가 당시 ‘민주화의 물결’에 동참했다는 소중한 증거다. 김씨는 “아버지가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 등을 읽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キャプション■(咸錫憲(左から2番目の白い服を着た人)、張俊河(先頭のメガネをかけた人)先生の間にキム・サボク氏の姿が見える。1974年1月に改憲請願百万人署名運動の宣誓をした後、裁判を受けることにした張俊河先生を連れて、キム・サボク氏が西大門刑務所の裁判場に行った日だ)
함석헌(왼쪽에서 두 번째 흰 옷을 입은 이), 장준하(맨 앞 안경 쓴 이) 선생 사이로 김사복씨의 모습이 보인다. 1974년 1월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 선서를 한 뒤 재판을 받게 된 장준하 선생을 모시고 김사복씨가 서대문 형무소 재판장에 간 날이다.
キム氏は、父が「外信記者専門」になることができた理由も説明した。「父は、1932年に生まれ、日帝時代に学生時代を過ごした。日本が韓国語と同じくらいに喋れたんです。また、勉強するのが好きだった父が、英語の本を見ていた姿は今でも目に鮮やかです」。こうして、外国語の実力を積んで、通訳なしで外信記者らと直接対話をすることができたのだ。
김씨는 아버지가 ‘외신기자 전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설명했다. “아버지는 1932년에 태어나 일제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일본어가 한국어만큼이나 편했던 거죠. 또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영어책을 들여다 보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외국어 실력을 쌓아 통역 없이 외신 기자들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었단 것이다.
キム氏は、父の死が1980年の光州につながると述べた。肝硬変を患ったキム・サボク氏が1980年に光州に行ってきた後、「同じ民族同士、どうしてこんなに残忍になれるのか」と痛飲(大量に酒を飲んでいた)していたというのだ。「当時はやめていた酒を再び飲む父が恨めしかったが、今考えてみると、その状況に耐えられ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父は1984年に、結局、肝臓癌で亡くなりました」
김씨는 아버지의 죽음이 1980년 광주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간경화를 앓았던 김사복씨가 1980년 광주에 다녀온 뒤 “같은 민족끼리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느냐”며 통음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당시엔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아버지는 1984년에 결국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金氏は、映画に現れていない父の本当の姿を知らせたいと言った。彼にとって父は、時代の痛みを知らせるために、自分の与えられた場所で最善を尽くした、平凡だが勇気ある市民の典型だ。1980年の光州以降、世界が少しでもよくなったら、それぞれが最善を尽くした父のような人のおかげだと彼は信じているという。「私の父でなくても、表に出ないところで民主化に寄与した人々は多いでしょう。その方たちの姿を見つけて知らせることが、残された私の役割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김씨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시대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평범하지만 용기있는 시민의 전형이다. 1980년 광주 이후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저마다 최선을 다한 아버지 같은 이들의 덕분이라고 그는 믿는단다. “저희 아버지 말고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민주화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찾아 알리는 일을 하는게 남겨진 저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原文:

ちょっと解説

今回は特別編です。

韓国映画やドラマなどの映像作品の字幕作成や吹き替え台本作成などのお仕事をしている、「西ケ原字幕社」代表の林原圭吾さんをゲストにお迎えしています。

#013でも紹介した映画「タクシー運転手」。映画の大ヒットや、娯楽映画としての脚色を、モデルとなった故キム・サボク氏の長男はどう感じたのか、改めて語っています。

記事に登場する咸錫憲氏は、植民地時代の独立運動家で、戦後、朴正熙政権下では民主化運動の長老的な存在でした。張俊河氏は雑誌「思想界」の発行人で、1970年に金芝河の有名な詩「五賊」を掲載するなど、朴正熙政権を痛烈に批判していた一人。その張氏が1975年8月、登山中に滑落死します。不審な死に多くの民主化運動関係者が他殺を疑い、検証活動に乗り出しました。

「思想界」を読むなんて、当時の韓国ではなかなかのインテリ。外国語を駆使し、外国の特派員(これも当時は相当な特権階級)を専門に乗せる運転手という姿からは、映画とはかなり違ったスマートな人物像が浮かんできます。

ところで、西ケ原字幕社さんはこの「タクシー運転手」の機内上映版の字幕を作成しています。ほかにも有名作品の日本語への橋渡しを多数手がけた林原さん。

なぜ翻訳者になったのか? お仕事をめぐる苦労話などもうかがいました。詳しくは本編をお聴き下さい!

音声はこちら

0コメント

  • 1000 / 1000